최양락 팽현숙 러브스토리 및 인생 이야기
최양락과 팽현숙 부부는 연예계의 유명한 부부입니다.
다만 잉꼬 부부가 아니라 방송에 나올때마다 티격태격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는 커플이죠.
사제지간으로 만난 이들 부부의 첫만남과 재산 형성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집이 10채이기에 부동산 투기이냐, 아니냐고 논란이 일었죠.
최양락 딸 사진(최양락 팽현숙 부부와 딸 최하나)
개그맨 최양락은 1962년 5월 20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납니다(최양락 고향). 올해 53살이죠(최양락 나이).
(최양락 학력 학벌) 도고초등하굑, 도고중학교, 온양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졸업
(최양락 프로필 및 경력) 1981년 MBC 개그콘테스트로 데뷔했지만, 이후 KBS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후 코미디 청백전, 좋은친구들, 웃음천국 등에 출연하면서 90년대를 주름잡습니다. 이후 2000년에 알까기 제왕전으로 다시 히트를 쳤고, 오랫동안 라디오 프로그램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을 진행하면서, 브론즈 마우스를 수상하기도 합니다.
8,90년대의 대표적인 개그맨중의 한명인데, 현재의 아내 팽현숙을 만나게 된 경위가 좀 특이합니다.
개그우먼 팽현숙은 1965년 경기도 이천에서 태어납니다(팽현숙 고향).
올해 50살이죠(팽현숙 나이).
(팽현숙 프로필 및 경력) 1985년 제3회 KBS 개그콘테스트로 데뷔
이후 유머 1번지 등에서 활약하다가 최양락과의 결혼 이후 연예계에서 은퇴했고, 가정 주부 겸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다시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추고 있습니다(팽현숙 직업).
최양락과 팽현숙은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나게 됩니다.
팽현숙: "제가 개그우먼이 된 건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어요. 제가 스물한 살 때 연예인이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았었어요. 그때 로비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편과 전유성 선배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어요."
팽현숙: "두 분이서 (이제는) 개그우먼도 날씬하고 예뻐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저와 눈이 마주쳤죠. 그러자 제게 다가와 ‘무슨 일로 방송국에 왔냐’고 물었어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갑자기 ‘개그맨이 되면 성공할 것’이라며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팽현숙: "이때 전유성 선배님까지 나서서 설득했지만 저는 거절했어요. 한 번도 생각지 않은 길이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때 남편이 제 이름을 물었고 팽현숙이라는 이름을 들은 순간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대더군요. “그 이름이면 됐다”며 자신만 믿고 시험을 보라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시험을 보게 됐어요."
이때 팽현숙은 KBS 개그맨 공채에 쉽게 합격하지만, 그 이후의 일이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최양락 팽현숙 젊은 시절 과거 사진
팽현숙: "남편에게 매일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나면서 개그를 배웠죠. 결국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고 일을 시작했어요. 저를 이 길에 들어서게 했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남편은 그 후로도 작은 코너에 투입시켜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줬어죠."
이때 두 사람은 약 2년 반동안 ‘유머 일번지’ ‘남 그리고 여’라는 코너에 함께 출연하면서 정분을 쌓습니다.
팽현숙: "어느 날 남편이 진지하게 ‘부모님이 널 보고 싶어 하신다’고 말하더라고요. 평소 유난히 절 예뻐하기는 했지만 의외였죠. 알고 봤더니 시부모님이 코너를 함께 하던 절 보시고는 마음에 들어하셨고, 둘이 잘해보라며 하셨더라고요."
하지만 팽현숙은 최양락의 술을 좋아하는 점과 경제관념이 희박한 단점때문에 그를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그러던 중 한 스포츠 신문에서 두 사람의 열애설이 터졌고, 최양락이 팽현숙의 부모님을 찾아갑니다.
팽현숙: "남편이 부모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보였어요. 결국 마음이 움직였죠."
이렇게 1988년 최양락과 팽현숙은 결혼식을 올리고 개그맨 커플 1호가 됩니다(최양락 재혼은 잘못된 루머).
(최양락 아내 부인)(팽현숙 남편)(최양락 배우자 팽현숙)
팽현숙 결혼식 사진(미인 개그우먼중의 한명인 팽현숙)
이후 두 사람은 딸과 아들 한명씩을 낳습니다(최양락 팽현숙 자녀 자식).
90년대 최양락의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곧 위기를 겪게 됩니다.
최양락: "90년대 말에 방송 활동에 위기가 있었어요. 코미디가 침체되면서 나이 든 코미디언들은 퇴출당하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99년에 쉴 겸해서 짐을 싸들고 무작정 호주로 가서 1년 동안 살았어요. 호주로 간 건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시끄럽지 않아 쉬기에 적당하다고 생각을 했고요. 그때 하나(최양락 딸 이름)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죠."
이렇게 최양락은 가족을 모두 데리고 호주로 가게 되고, 약 1년 후에 다시 한국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팽현숙: "그동안 번 돈을 다 모아서 호주로 갔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집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신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선불로 1년치 렌트비를 다 내고서야 겨우 집을 구할 수 있었죠. 하는 일 없이 지내긴 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도 많이 했어요."
팽현숙: "하지만 한국에서 가져간 돈은 금방 바닥이 드러났어요. 게다가 남편 얼굴을 보니까 한국을 떠나기 전 드리워져 있던 수심의 그림자가 말끔히 걷혀 있더라고요. 돌아가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수긍했죠. 그런데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하나는 호주가 좋았나보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호주로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지원을 해줬죠."
이렇게 약 1년만에 다시 한국으로 복귀한 최양락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바둑대국을 패러디한 알까기 제왕전으로 크게 인기를 얻게 됩니다.
또한 팽현숙 딸 최하나는 다시 호주로 가서 공부를 하게 되죠.
결국 조기 유학을 하게 된 셈인데, 현지에서 적응을 잘 합니다.
최하나: "선생님이 참 친절하셨어요. 아이들도 저에게 하나하나씩 알려주려고 노력을 했고요. 제가 못 알아들으면 몸짓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었죠. 그래서 조금씩 알게 되었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까 귀가 뜨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최하나는 호주에서도 명문 사립학교로 불리는 라벤스우드고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합니다(최양락 딸 학교).
조기 유학을 경험한 최하나가 자신의 비결을 설명합니다.
최하나: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해요. 상대가 말을 할 때 단어를 한두 개만 알면 대충 뭘 말하는지 눈치로 알 수 있거든요. 그리고 책을 읽을 때 꼭 소리내서 읽어야 해요. 그러면 말을 하는 것도 빨라지고, 저절로 문법이 익혀져 글 쓸 때도 도움이 돼요. 그리고 틀려서 창피를 당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요."
최하나: "또한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운동을 잘해야 해요. 같이 운동을 하면서 친해지거든요. 공부 잘하는 것보다 운동 잘하는 아이가 더 인기가 좋아요. 특히 수영은 미리 배워서 오는 게 좋아요."
최양락은 2012년에 자기 딸을 공개하기도 합니다.
최양락: "현재 딸이 계약직 교사다. 더 공부하겠다며 대학원에도 갔다. 비교적 나를 닮은 것 같다."(최양락 딸 직업)
계약직 교사로 일하면서 대학원도 공부하겠다는 자세가 좋은 것 같습니다.
최양락 팽현숙 가족 사진
최양락 팽현숙 아들 사진
위에서 언급한대로 최양락 팽현숙 부부는 결혼 이후에 최양락은 그대로 방송일을 계속하고, 팽현숙은 방송을 쉬게 됩니다.
팽현숙: "결혼이후 남편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권은 전적으로 제가 가졌어요. 1년 동안 남편이 벌어오는 출연료를 저축하면서 알뜰하게 살았어요. 큰돈은 벌지 못해도 절약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죠. 남편은 선후배와의 술자리에서 늘 아이디어를 짰기 때문에 잔소리도 할 수 없었어요. 들어오는 돈은 일정한데 나가는 돈은 점점 늘어만 갔죠. 어쩔 수 없이 제가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팽현숙은 처음에 도자기 사업, 옷가게를 열었다가 별로 이득을 보지 못하고 망하게 됩니다. 이후 자신에게 음식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음식점을 하게 되었죠.
팽현숙: "도자기 가게와 옷 가게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가정주부로 안주하기는 싫었어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음식에 관심이 갔죠. 제가 음식 솜씨가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때 워커힐호텔 근처 아파트에 살았는데 북한강 쪽으로 드라이브를 가다 보면 강가에 전망 좋은 카페가 많았어요."
팽현숙: "신중하게 시장조사를 한 다음에 그동안 모은 돈과 약간의 대출을 받아 자금을 마련해 경기도 구리에 레스토랑을 오픈했죠. 시작한 지 1년 만에 투자비를 뽑았고 ‘이 정도면 됐구나’ 싶었는데 웬일인지 그 뒤로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는 사람들만 와서는 매출이 오르기 어려웠던 거예요. 구리라는 지역상의 한계가 있었고 카페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야 손님층이 두터워진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팽현숙은 순댓국집을 열어서 크게 성공을 합니다. 체인점까지 둘 정도로 번창하게 되었죠.
팽현숙: "그렇게 해서 산 양수리 땅에 시작한 ‘꽃피는 산골’은 대박이었어요. 8개월 만에 투자비용을 뽑고 나니 그제야 외식업에 자신감이 좀 붙더라고요. 불황일수록 평범한 한 끼 음식이 잘 팔리고 외곽 식당일수록 맛으로 승부해야 해요. 지금의 순댓국집을 시작할 때 사람들이 촌스럽게 웬 순댓국집을 하느냐고 했어요. 전 이미 연예인이라는 화려함을 벗고 평범한 아줌마로 돌아온 지 오래예요.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이 없듯이 직업에도 귀천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이후 팽현숙은 호주에서의 생활 경험을 살려서 부동산 투자(?)에 뛰어듭니다.
팽현숙: "호주에서 부동산 임대업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귀국해서는 부동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부터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리고 2009년 방송에서 임대사업용으로 보유한 집(부동산)이 10여채에 이른다고 자랑을 합니다.
팽현숙: "집장만은 (결혼) 8개월만에 했다. 내 돈 100%를 갖고 집을 사지는 못했고 어느 정도 모으면 대출을 받아 샀다."
팽현숙: "남편 최양락의 기를 살리자는 생각으로 재테크를 했다. 남편이 집문서, 자동차, 땅문서, 상가문서, 회원권 등을 선물하면 좋아한다. 사람들이 ‘나같은 사람이 해낼 수 있을까’하고 겁을 내는데 용기를 내 (재테크에) 도전하라."
팽현숙: "남양주 도농동 상가를 3억원에 주고 샀어요. 5억원을 투자해 새로 지었습니다. 지금은 그 땅이 뉴타운으로 포함돼 현재 땅 시세만 10억원 이상 갈 거예요. 수익률이 300%에 가깝죠."
방송 이후에 팽현숙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비판이 크게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상 팽현숙의 부동산 투자를 사람들이 투기로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에 팽현숙은 이렇게 해명합니다.
팽현숙: "부동산 투기를 한 것처럼 비춰진 기사 내용 때문에, 저도 당황했고 남편도 불같이 화를 냈어요. 연예인은 이미지가 중요한데 부동산 투기꾼처럼 보도되는 바람에 남편이 어찌나 속상해하던지…. 저도 상처를 많이 받았고요."
사실 자신의 돈을 가지고 집을 사서 임대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팽현숙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원래 이런 문제는 세금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데, 정부와 국회가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죠.
팽현숙처럼 집을 10채, 100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중과세를 매기든가, 혹은 법인 사업자로 유도해서 전문적으로 임대업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법체계가 그렇지 못한 상태죠.
팽현숙: "제가 재테크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노후 준비였어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불안정하잖아요. 남편은 개그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가정경제를 위해서 내가 현실적으로 살아야겠구나, 하고 마음을 먹었죠."
어쨌든 팽현숙의 말처럼, 이들 부부의 노후 준비는 잘 된 것 같네요.
* 최양락 팽현숙 이혼 위기
최양락 팽현숙 부부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팽현숙: "남편을 그동안 왕처럼 모셨다. 결혼 생활 23년간 최양락의 수족으로 살아온 지난 날이 억울하다며 남편의 이혼 선언을 했던 위기가 있었다."
최양락: "몇 달 전 팽현숙이 싸우다가 이혼하자고 말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팽현숙에게 맞춰왔다고 생각했다. 충격적이었다."(최양락 이혼)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부부조차도 서로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 정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오해와 시각 차이가 불화의 원인이 되죠.
팽현숙은 남편을 왕처럼 덧받들어 살았고, 최양락 역시 아내에게 맞추어 주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누구의 말이 맞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팽현숙은 남편을 스승과 제자, 선배와 후배의 관계로 만나게 됩니다.
후배들에게 이런 충고를 하죠.
팽현숙: "저는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사내결혼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제가 개그맨 선배와 결혼하지 않았나. 결혼을 하고나니 후배에게 명령하듯 대한다. '용돈줘' '살림하라'고 명령한다."
아무래도 정황상 팽현숙의 말이 좀 더 진실에 가깝겠네요.
물론 팽현숙의 성격상 완전히 지고는 살지 못합니다.
최양락: "내 머리스타일이 이러다 보니 드라이를 해야한다. 일이 있을 때는 미용실가서 하지만 특별한 일 없으면 애 엄마가 해준다. 하루는 머리를 앞으로 쏠리게 하더라. 그러지 말라고 해도 계속 하더라. 그래서 왜 자꾸 쏠리게 하냐고 물었더니 아내가 ‘당신은 얼굴을 가리면 가릴수록 괜찮아. 유리해’라고 하더라. 외모를 가지고 비하한다."
최양락: "언젠가 하루는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당신은 멀리 있을 때는 괜찮은데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못생겼다’라고 하면서 ‘추물단지’라고 했다”며 “또 머리통이 너무 크다면서 ‘대갈장군’이라고 놀려댄다. 그리고 배가 나왔다고 ‘배불뚝이’라며 애 낳고 오라고 한다."
결국 이들 부부의 이혼 위기는 최양락의 편지로 마무리됩니다.
팽현숙: "내가 정작 이혼 선언을 하자 남편이 갑자기 손도 떨고 입도 떨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처음봤다. 하지만 갑자기 남편이 재산분할을 물었다. 이제껏 재산은 필요없다고 말했던 남편이 재산을 챙기기 시작했다."
팽현숙: "이후 남편이 가출하면서 편지를 남겼다. 자신이 없어도 잘 살라는 마음에 감동받아 답장을 했다. 그에게 '나도 사랑하니깐 같이 살자'고 답했다. 지금까지 최양락이 무척 커 보였다. 하지만 그 편지를 전해 놓고 뒤돌아 서는 순간 그 모습이 한 없이 작아보였다. 나 아니면 이 사람을 이제 누가 챙겨줄까하는 생각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티격태격은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네요.
최양락 팽현숙 부부를 보면 개인적으로 팽현숙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개그맨의 세계에서 선배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잘 삽니다.
비록 재산 형성 과정에서 그리 호감이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법이 허용하는 내에서 투자를 했고, 이제까지 가정을 잘 꾸려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여자같네요.
또한 최양락 역시 한가지만은 잘한 것 같습니다.
위계질서가 엄격한 개그맨 선배였고 이제까지 집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그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내에게 진심을 보입니다.
결국 최양락의 이런 약한 모습(?) 덕분에 이들 부부는 파경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 예전의 행복을 되찾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도 굽힐때는 굽힐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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