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인생 이야기
이종범, 양준혁, 선동열은 서로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그들을 악연이라고 쉽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죠.
또한 이종점 아내 정정민와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정정민(혹은 정연희)의 말 한마디가 무척 인상적이네요.
이종범 가족 사진(왼쪽부터 딸 이가연, 아내 정정민, 아들 이정후, 이종범)
야구선수 이종범은 1970년 8월 15일 광주에서 태어납니다(이종범 고향). 올해 45살이죠.
(이종범 학력 학벌) 서림초등학교, 충장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졸업
(이종범 프로필 및 경력)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
별명이 야구천재, 바람의 아들 등이 있을 정도로, 한국 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깁니다.(현재는 은퇴한 뒤 야구 코치로 활동중)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원래는 왼손잡이였다는 점입니다.
이종범: "어렸을 때 오른손 글러브밖에 없어서, 오른손으로 야구를 하게 되었다."
이종범의 야구 센스가 대단히 뛰어난데, 만약 그가 왼손으로 야구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목차
* 이종범 양준혁의 인연의 시작
* 이종범 양수경의 인연과 김응용의 분노
* 이종범 부인 정정민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 이종범 일본에서의 실패 이유
* 정정민의 어려움
* 양준혁의 이종범에 대한 비난
* 선동렬의 양준혁 이종범 강제 은퇴
* 선동렬의 과거
* 다채로운 인생
* 이종범 양준혁의 인연의 시작
이종범과 양준혁의 인연은 1993년 프로 데뷔 첫해부터 서로 얽히게 됩니다.
(원래 양준혁은 1992년에 데뷔했어야 했지만, 양준혁이 1992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에 입대함. 그 이후 1993년 삼성 라이온스의 1차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
공교롭게도 둘은 1993년 프로야구 신인왕의 강력한 라이벌이 됩니다.
결국 양준혁이 그해 신인상과 타격왕을 동시에 거머쥡니다.
(양준혁은 신인으로서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가 됨)
이렇게 이종범은 그해 신인상은 놓쳤지만, 그 대신에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게 됩니다.
이후 이종범은 1994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면서 단일 시즌 최다 안타(196안타), 단일 시즌 최다 도루(84도루)에 19홈런을 기록했고, 1995년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광주 홈 경기에서만 출장하게 됩니다.
* 이종범 양수경의 인연과 김응용의 분노
참고로 이종범이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고 해태가 시즌 우승을 했던 1993년 해태는 우승 포상금을 별로 주지 못합니다. 결국 구단장이 김응룡 감독 몰래 이종범과 선동열의 음반을 발매합니다.
(그룹 이름은 투앤원, 멤버는 가수 양수경, 선동열, 이종범)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로 우승을 했는데 우승 보너스가 500만 원 나왔다. 구단주가 나와 선동렬을 호출해선 서울 가서 음반이나 하나 내자고 하셨다."
이종범; "서울을 오가며 작업했는데 전지훈련에서 하필 나와 선동렬이 나란히 다친 거다. 감독님이 화를 많이 내셨다. 감독님이 ‘저 둘 나이트클럽이나 알아 봐’ 하셨다. 보수적인 편이셨다."
이종범: "한번은 가수 양수경이 덕아웃으로 나를 찾으러 들어 왔었다. 그런데 양수경을 모르는 감독님이 나가라고 하셨다. 여자가 덕 아웃에 들어오는 걸 정말 싫어하셨다."
김응룡: "노래를 들어보니 정말 한심했다. 그래도 ‘한 장이라도 더 팔아줘야지’ 라는 생각에 음반을 샀었다."
사실 김응룡은 처음에는 음반 작업을 모르다가 나중에 알고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운동선수에게 다른 일을 시킨 구단주는 물론이고, 자신도 모르게 일을 진행시켰던 점에서 더욱 더 화가 났을 것 같네요.
* 이종범 금종범 사진 사건
그런데 1994년에는 이종범이 더 큰 활약을 하게 됩니다.
(당시 기록) 499타수 196안타, 3할 9푼 3리로 수위타자에 오르고, 최다득점, 최다도루, 시즌 MVP 등 전 부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빈다.
(이중 84도루는 아직까지 깨지 못한 신기록임).
결국 1994년 말에는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이종범을 섭외해서 신년특집을 만들려는 열풍이 불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진은 '일출을 배경으로 이종범이 포효하는 사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았기에 이것은 흔했고, 모 매체에서 '이종범을 그라운드에서 날게 하자'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됩니다.
이종범 흑역사
즉, 이종범을 홀딱 벗겨서 황금색 페인트를 칠한 다음에 그라운드를 질주하게 하는 장면이었죠.
사실 운동선수에게 터무니없는 제안이었는데, 당시 이종범이 젊었기 때문일까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결국 나온 사진이 아래와 같은 우스꽝스러운 사진이죠.
(지금보면 굉장히 우스운 사진인데, 당시 이종범의 기록과 열풍을 살펴보면, 그리 가벼운 사진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종범 부인 정정민 첫만남과 러브스토리
이렇게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던 1994년 이종범은 아내 정정민을 만나게 됩니다.
(가끔 이종범 부인을 정정미로 잘못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오타입니다. 또한 정정민은 최근 정연희로 개명합니다. 이에 이종범이 재혼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프닝도 있었죠)
(따라서 현재의 이름은 정연희가 맞는데,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정정민을 기준으로 서술합니다.)
일부 기사에서는 정정민이 이종범의 팬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오보였습니다. 정정민은 이종범을 만나기 전에는 야구장에도 가본 적이 없었죠.
정정민(정연희) 프로필
고향 수원
서울 숭의여전 응용미술과 졸업
1994년 초 패션 공부를 위하여 이탈리아로 유학해서 1년간 공부
1995년 ~ 1996년 2년동안 프랑스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
(정정민 나이는 이종범보다 1살 연하)
이종범 아내 사진
(이종범 아내 정정민 직업 패션 디자이너, 프랑스 유학파.
다만 둘이 처음 만났을 때는 학생이었음)
정정민: "사실 전 야구를 잘 몰라요. 결혼한 후에야 비로소 사이클링 히트 같은 야구 용어를 알게 됐을 정도죠."
정정민: "그래서 야구선수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어요. 친구의 소개로 오빠(남편 이종범)을 처음 만났을 때, 오빠가 트레이닝 바지와 하얀 면티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나왔어요. 상상하던 야구 선수와 달리 너무 평범했지만 왠지 끌리는 데가 있었죠."
한국에서 잠깐 이종범을 만난 정정민은 곧 프랑스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때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을 키워나가게 되죠.
이종범 부인 사진(근래 모습)
정정민: "프랑스에서 외로울 때마다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가 1천여통이었어요. 그런데 오빠는 단 3통을 답장으로 보냈어요. 많이 무뚝뚝했죠."
어쨌든 연애 중간에 정정민 집안의 반대도 있었지만, 이종범의 설득으로 허락을 하게 되었고, 둘은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하게 됩니다.
결혼 전이었던 1996년 12월과 1997년 1월달에는 함께 유럽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이 당시 유럽 여행 일행들은 이종범 친누나 부부와 포수 정회열 부부, 그리고 이종범의 친구 부부들이 있었고, 정정민을 이들을 위한 '가이드'를 맡게 됩니다.
(참고로 이종범은 여행중 프랑스에서 있었던 정정민의 졸업식에도 참석함)
이종범: "정식으로 소개합니다.제가 사랑하고 영원히 우정을 나눌 정정민씨입니다."
유럽 여행 후 정정민이 매스컴에 포착되자, 이종범이 기자들에게 한 첫 인삿말이었습니다.
이종범 부인 결혼식 사진
이후 이종범은 부인 정정민과 1997년 11월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종범 배우자 정정민)(이종범 와이프 정정민)
그리고 둘은 아들 이정후, 딸 이가연을 낳게 됩니다.
(이종범 가족 관계)(이종범 자녀 자식)
이종범 가족 사진
* 이종범 일본에서의 실패 이유
이종범과 정정민이 결혼하자마자 정정민은 공교롭게도 일본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종범이 일본의 주니치로 이적을 했기 때문이죠.
(당시 해태의 열악한 재정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측면이 강했음.)
이종범: "(일본에서) 첫해에 당한 팔꿈치 골절상 전까지는 한국에서만큼은 아니라도 만족할 만큼 잘 때리고 잘 달렸어요. 뼈가 부러져 남은 시즌을 병원에서 보내게 된 뒤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죠."
이종범: "부상 이후 너무나 힘들었어요. 구단 측이 용병선수들, 특히 아시아계 선수들에게 은연중에 스트레스를 주곤 했는데, 2001년 들어서는 내놓고 차별을 하는 거예요. 한 마디로 더 이상 일본에 있을 희망이 없어진 거죠."
정정민: "저도 힘들었는데, 오빠만 했겠어요. ‘힘내라’고 편지를 써서 가방에 넣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요..."
이렇게 정정민은 신혼 초부터 내조의 어려움을 알게 됩니다.
정정민: "오빠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팬들에게 가장 멋있는 플레이를 보여 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됐어요."
일각에서 이종범 이혼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이것은 단순한 루머일뿐입니다.
정정민; "(과거 한 방송에서) 결혼 생활한지 13년(올해로 18년)이 됐다. 13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종범과 다시 결혼할 것이다."
정정민: "사실 남편이 평소에도 '드림팀2'에서 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한다. 하지만 가사 일을 돕는 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이종범이 조금 뜨끔했을 것 같네요.
어쨌든 부부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정정민의 어려움
정정민: "아들(이정후)이 아빠의 뒤를 이어서 야구선수를 하겠다면 적극 밀어줄거에요. 다만 가연이(딸 이름)가 야구선수의 아내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정정민: "스타플레이어의 아내는 여러가지로 제약이 많아요. 자신의 삶을 갖기가 힘들죠. 남편을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줘야 하고, 공인의 아내로서 행동도 조심해야 하거든요."
정정민이 이종범과 결혼하면서 얻은 것도 많지만, 또한 잃은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이종범은 부상으로 일본에서 실패하고, 이후 다시 한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 양준혁의 이종범에 대한 비난
이에 대하여 양준혁이 이종범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양준혁: "이종범이 일본에서 생활하다 국내 무대에 복귀했을 때 난리가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내 기준에선 웃겼어요. 실패해서 왔잖아요. 한국 야구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온 사람이잖아요."
양준혁: "한국과 일본의 최고 선수들끼리는 비슷하게 가야해요. 전체적인 수준을 말하는 게 아니라 탑과 탑이 달렸을 때는 비슷하게 가야된다구요. 정민태도 마찬가지구요. 그들의 책임이 커요. 더욱 이해가 안가는 건 그렇게 하고 돌아왔는데도 (한국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는 거죠."
양준혁: "난 왜 못나갔냐구요? 갔다와도 됐지만 한번 나가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예요. 조금만 평범했더라면 메이저리그도 도전해보고 안되면 오면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 못하겠더라구요."
확실히 양준혁의 프라이드가 느껴지네요.
사실 리그 최고 선수는 '국가대표'와도 같은 상징성을 가지게 됩니다.
프로 선수이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활동하게 되니까요.
그렇다고 양준혁의 말이 100% 다 맞을까요?
이종범 역시 당시 해태의 재정난으로 어쩔 수 없이 해외를 진출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고, 또 '도전'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 하고, 최고가 될 수 있는 무대에 도전을 해야 할까요?
이 부분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밑에서 이종범, 선동렬, 양준혁의 또다른 인연을 살펴본 다음에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네요.
* 선동렬의 양준혁 이종범 강제 은퇴
선동렬은 감독으로서 유명하지만,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과 기아(구 해태)의 프렌차이즈 스타로 유명한 양준혁과 이종범을 '강제 은퇴'시킨 전적이 있기 때문이죠.
양준혁은 선동령 감독 체제의 삼성에서 주전이 아닌 대타요원으로 뛰었고, 결정적인 대타 상황에서도 나오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합니다.
결국 2010년 7월 26일 시즌중 현역에서 은퇴하겠다는 발표를 합니다.
(2010년 9월 19일 대구에서 은퇴식 및 은퇴 경기를 치룸)
그리고 이종범 역시 양준혁과 비슷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종범은 2012년 스프링 캠프에 참가하여 2달 가까이 몸을 만듭니다.
이종범: "올해 후배들과 함께 다시 우승에 도전하겠다."
이렇게 의욕에 불타던 이종범은 불과 2주만에(정규시즌 개막 1주전인 3월 31일) 갑작스럽게 은퇴선언을 하게 됩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터뜨린 이종범
그리고 이종범은 선동령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합니다.
이종범: "2군에서도 뛸 수 있었겠지만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 그게 정말 나다운 것이었다."
이종범: "(한가지 아쉬운 점은)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때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이렇게 급히 은퇴하지는 않았을 텐데…."
선동렬: "성급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구단과 상의해서 은퇴 경기 날짜를 잡았다면 멋있게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차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결국 이종범은 은퇴 경기와 기아가 제안한 해외 연수와 코치 자리를 거부하게 됩니다.
이종범: "개인적으로는 구단이 은퇴식도 고맙고 영구결번이라는 백넘버도 고맙고 해서 나머지는 '제가 한번 스스로 알아서 앞으로 비포장도로를 아스팔트를 쫙 만들어가면서 제가 삶을 살겠습니다' 라고 할 때는 구단도 '알았다, 그 대신 언젠가 꼭 돌아와 달라' 그런 약속을 하고 끝마쳤으니까 괜찮다."
이종범: "이제는 시즌이 시작됐는데 나라는 사람이 은퇴경기하기 위해서 후배들이 1회부터 9회까지 끝날 때까지 집중해야 하는데, 한두 타석 나가자고 하기 위해서 최상의 컨디션도 아니고..."
참고로 이종범은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서 은퇴식과 은퇴 경기에 참가하지만, 기아에서는 코치직을 하지 않고, 2012년 10월부터 한화 이글스의 주루 코치를 맡게 됩니다.
그런데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양준혁과 이종범을 강퇴 은퇴시킨 것이 선동열의 잘못일까요?
* 선동렬의 과거
양준혁과 이종범은 마지막 순간까지 선수 생활을 하기를 원했고, 또 아름다운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했습니다.
분명 선동열같은 급작스러운 은퇴를 원하지는 않았죠.
하지만 그 마지막은 누가 정할 수 있을까요?
양준혁과 이종범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역에서 계속 뛰기를 원합니다.
나이때문에 본인의 기량이 저하되었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죠(은퇴 당시 양준혁은 만 41세, 이종범은 만 42세였음).
참고로 선동열은 1999년 시즌을 마치고 갑자기 은퇴를 선언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가 만 36살로 성적도 좋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러브콜을 받고 있던 상황이었죠.
투수로서 나이가 적지는 않았지만, 마무리 투수나 중간 계투 요원으로 몇년간 더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동열은 과감하게 은퇴를 선언하고 현역 생활을 접습니다.
선동열: "좋은 모습일 때 떠난다."
만약 선동열 본인이 현역 시절 은퇴를 질질 미루다가 후배들에게 그런 강요를 했다면, 분명 비난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깔끔하게 현역을 떠났고, 감독의 권한으로 후배들에게 은퇴를 종용한 것은 비난받을 사항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마지막까지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양준혁과 이종점 역시 비난받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요.
* 다채로운 인생
이렇게 인생은 무척 다채롭습니다.
선동열이나 양준혁, 이종범은 본인의 가치관에 맞게 각자의 인생에 최선을 다합니다.
이런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인생에 대한 이해도 옅은 사람들이, 막무가내로 편을 들어서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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