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및 아들 근황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은

1973년 10월 19일에 일어난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 치하 유신 체제의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으로

꼽힙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최종길 교수는

서울대 법대, 스위스 취리히 대학,

독일 쾰른 대학에서 공부한 뒤

1962년 서울대 법대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사망 당시 42세이던 최 교수는

부인과 아들, 딸을 두고 있었죠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 교수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는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최종길 교수 같은 경우

서울대 법학과(학·석사)를 졸업하고

독일(서독) 쾰른 대학교(박사)에

유학가서 독일의 대표적 민법과

국제사법 전문 법학자인

게르하르트 케겔 밑에서 수학했습니다

또한 최종길 교수 께서는

하버드 법학대 교수 제롬 코헨,

에드윈 라이샤워등의

세계적인 석학들과도

친분이 두터웠다고 하는데요.

그랬던 최종길 교수는

1973년 10월 16일,

유럽 간첩단 조작 사건의 참고인으로

수사에 협조하고자

중앙정보부 요원 최종선과

함께 웃으며 중앙정보부에

자진출두하였으나

그로부터 3일 뒤인 10월 19일,

중앙정보부는 최 교수가

유럽 간첩단 소속 간첩인걸

고백하고 중정 본부 7층에서

투신 자살했다고 발표했죠

그러나 최종길 교수 유가족들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스승인 게르하르트 케겔 교수와

친구 제롬 코헨 교수등이

최 교수는 고문을 받고

살해된것이라고 주장하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이후락 이었으나 윤필용 사건과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인해

모든 실권을 상실한채

연금 상태에 있었고,

당시 국내담당 차장이었던

검사 출신 김치열과

5국(대공수사) 국장이었던

검사 출신 안경상의 주도하에

최종길 교수가 간첩으로 조작되고

고문치사 당하였음에도

간첩임을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 이겨

7층 화장실에서

투신자살 했다고 허위 조작한 것이

바로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 입니다

신경림 시인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을때

중정 요원이 신경림 시인을 끌고

창가로 가서는

"야 이새끼야, 여기가 어딘지 알아?

여기가 최종길이가 떨어져

죽은데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한 끝에

"최 교수는 중정의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간첩이라는 자백 강요를

끝까지 거부했다"라고

그를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적극적으로 투쟁을 한것이

아니더라도 권력의 강요를

끝까지 거부한 소극적인 저항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할수 있다는

취지의 발표였는데요

이후 최종길 교수 유족들은

국가권력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최교수가 사망했다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 교수는

“아버지께 5·16 쿠데타 뒤

박정희 측에서 ‘혁명정부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군사정부에 협력하기를

극구 거부하셨다. 그때부터 미움을

샀다는 말도 나돌았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유신체제 반대 투사는

아니었다. 제자를 사랑하는 학자였을 뿐이다.”

라는 말을 했는데요

2006년 대법원은

"국가권력이 나서서

서류를 조작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직적으로 사실을 은폐하고

고문 피해자를 오히려

국가에 대한 범죄자로 만든 사건에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결하여 국가는

최종길 교수 유족에게

18억 6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최 교수가

살해된 것을 법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수있죠

최 교수가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받고 사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하면서 서울대 학생들이

유신반대 데모를 하다가 붙잡히자

 

 

 

 

 

최종길 교수가 서울대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박정희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라고 발언한 것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 입니다

이는 아주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유신 체제에선 당연한 말도

죽을 이유가 되는 시대였으니

안타깝게도 최종길 교수 의문사 사건은

그를 건물 밖으로 집어던져

살해했음이 유력한 것으로 보이는

당시 중정요원들은

처벌받지도 않고 잘 사는 중이죠

2003년 최종길 교수가 졸업하고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대학교에서는

근대법학교육 백주년 기념관 1층 강의실을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최종길 기념홀이라 명명하여 헌정하고

그의 부조를 세웠습니다

원래는 밖에 붙어있었으나

백주년 기념관이 리뉴얼되면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죠

그런데 한편으로 서울대는

이 사건의 원흉으로 의심받는

신직수와 사돈인 홍진기의 호를 딴

유민홀을 짓는 모순된

행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84년 최광준 교수는

20년 전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뒤따라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최광준은 독일에서 아버지의 은사와

동료 학자들 도움으로

법학박사 학위 과정을 밟았죠

최광준 교수 같은 경우

독일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94년

경희대학교 법대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 교수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쫓으면서 인권법 전문가가 되었죠

우선 아버지 사건을 포함해

권위주의 시대 의문사를 조사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의문사위 조사로 최종길 교수의 죽음은

타살이라고 국가기관에서 공식 인정했고

아버지를 따라 법학자의 길을 걷는

최광준 교수는 새로운

사명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

최광준 교수 말하길

“법학 분야가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선진 학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명으로 사셨던

아버지가 40대 초반에

반인륜적 국가폭력으로

잔인하게 비명횡사하셨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유산은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 아픔을 기억하고 치유하라는 게

아버지가 내게 남겨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했는데요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 교수는

어머니 백경자 여사의 유지에 따라

최 교수의 사망으로 받은 보상금을

전액 서울대학교에 기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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