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지원 인생 이야기
탤런트 왕지원은 최근에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잡지 모델 경력을 제외한 연기만 놓고 볼때 2012년 데뷔)
그런데 단기간에 주연급 배우로 발돋음을 했네요.
또한, 왕지원 집안과 개인적인 일들이 무척 흥미롭네요.
왕지원 사진
탤런트 겸 전 발레리나 왕지원은 1988년 11월 12일 태어납니다.
올해 27살이죠(왕지원 나이).
(왕지원 학력 학벌) 선화예술중학교, 영국 로얄발레스쿨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학과 학사 졸업
(왕지원 프로필 및 경력) 2007년 전국신인무용콩쿠르 특상
2009 국립발레단 단원
이후 발레를 은퇴하고, 2012년 닥치고 패밀리에서 연기자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드라마 굿닥터, 상속자들, 로맨스가 필요해 3, 운명처럼 널 사랑해, 어떤 안녕 등에 출연합니다.
# 목차
* 왕지원 집안 국제그룹 - 끝내 재기에 실패
* 왕지원 아버지 1급 공무원
* 어린 시절
* 유학을 떠난 이유
* 모델로 활동하게 된 왕지원
* 왕지원, 연기자가 된 이유
* 왕지원 성형하지 않았기에 개성적인 미인으로
* 왕지원 다시 발레리나로
* 왕지원 남자친구 경험담(왕지원 남친)
* 왕지원의 문제
* 왕지원 집안 국제그룹 - 끝내 재기에 실패
잘 알려진 것처럼 왕지원 외할아버지가 바로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입니다.
(2009년 타계)
보통 블로그와 뉴스에 우리나라 재계 서열 7위라고 알려졌는데, 1980년대 초반까지 6위였습니다. 당시 삼성, 현대, 대우 등의 선두 그룹 다음 가는 위상이었죠.
그러다가 제 5공화국 대통령 전두환의 눈밖에 나면서 그룹이 일순간에 공중분해되었죠.
(왕지원 재벌 출신)
국제그룹은 원래 부산을 근거로한 향토기업이었고, 프로스펙스란 신발 브랜드로 유명했으며, 화학, 섬유, 건설, 종합상상 등의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 존재했다면, 아마 재계순위 6~7위의 대기업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하네요.)
그런데 전두환에게 정치자금을 적게 받치려고 하다가 결국은 해체됩니다.
(일해재단)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1988년 청문회 증언) 국제그룹 해체를 보고서, 정치자금 액수를 2배로 올렸다."
즉, 국제그룹이 시범케이스가 된 면도 없지 않아 있죠.
이후 삼성, 현대, LG등에서는 적극적으로 정치자금을 헌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국제그룹의 강제 해체는 2003년 법원으로부터도 인정받게 됩니다.
법원: "국제그룹이 헤체된 것은 (정치권의) 강압에 의한 것이다."
다만 당시 강탈당했던 그룹 계열사들이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다시 소유권을 반환받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좀 더 일찍 재판을 청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그리고 양정모 회장은 재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09년 사망하게 됩니다.
* 왕지원 아버지 1급 공무원
왕지원 아버지는 감사직에 재직중인 왕정홍(이름) 기획관리실장입니다.
(왕정홍 프로필) 행정고시 패스 후 재정경제감사국장, 감사교육원장 등을 거친 1급 공무원
왕지원의 이러한 배경이 알려지자, 왕지원은 속마음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왕지원: "엄친딸이라는 수식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어요. 그냥 이슈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이죠. 사실 연기자로 인정받고 알려지기 전에 먼저 집안에 대해 알려지면서 엄친딸로 포장돼 아쉬웠어요. 하지만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긴 해요. 다만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죄송해요."
확실히 이렇게 공개된 가족사에, 가족들이 부담을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어린 시절
왕지원: "5살 때부터 발레를 했다. 어렸을 때 미술, 피아노 등 예체능을 다양하게 배웠고 그 중 하나가 무용이었다. 유독 무용만큼은 싫증을 내지 않고 오래오래 좋아했다."
왕지원: "부모님도 내가 무용하는 것을 좋아하셨기에 든든한 지원을 해주셨다. 발레리나라는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린 나이에 발레가 좋았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저 행복했던 것 같다."
사실 어릴 때부터 적성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왕지원이 5살때부터 꾸준히 무용을 했다니, 여기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네요.
왕지원: "초등학교 때, 여자친구들의 시샘도 받았다. 남자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다. 함께 축구도 할 정도였다. 발레 때문에 자주 학교를 빠지다가 남자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그런 여자아이였다. 그래서 사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많이 사귀지는 못했다."
왕지원: "선화예중에 입학하고부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는 만나기 힘들었다. 아마 그 시절 그 공간의 모두가 그랬으리라. 어렸음에도 시기와 질투가 심했고, 무엇보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거셌다."
그러다가 왕지원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15살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 유학을 떠난 이유
왕지원: "15살때 아빠 일 때문에 가족 모두가 영국으로 갔고, 나는 영국 왕립학교인 로얄발레스쿨에 입학했다. 무용을 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꿈의 학교였다. 하지만 거기의 수준은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3~4학년이 배울 테크닉으로 수업을 진행하더라."
왕지원: "결국 아주 지루했다. 무엇보다 기숙사에 살아야 하는 조건으로 입학했는데 그 학교 전체에 동양인은 나 한 명이어서, 언어 장벽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티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왕지원은 골반 뼈가 부서지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왕지원: "당시 휠체어 신세를 질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바심이 커졌다. 그 나이에 쌓는 실력은 중요했다. 근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는데 다쳤으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자연스레 방황을 시작했다. 사춘기 때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 모델로 활동하게 된 왕지원
졸업 이후 왕지원은 한국으로 돌아와 한예종에 입학해서 계속 무용을 전공합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외도(?)를 하게 되었죠.
왕지원: "한국에서 우연히 길거리에서 민낯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냐고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것이 연예계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죠."
이후 왕지원은 한예종을 졸업하고 국립발레단 단원으로 생활하지만, 동시에 화장품 회사 모델, 잡지 메인 모델로도 활동하게 됩니다.
왕지원: "대학을 다니면서 모델일과 병행했어요. 꾸며진 저의 모습을 보고, 생각지 못했던 일을 하게 되니 새로운 행복감이 찾아오더라구요. 그래서 발레를 그만두고 배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왕지원: "카메라 앞에서 예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다는 게 상상 이상의 행복감을 주더라구요. 발레를 할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기분이었어요. 내가 잘 웃는 스타일이 아닌데 웃고 있는거에요. 게다가 아파서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니까 너무 행복했어요."(왕지원 발레 포기 이유)
왕지원: "또 잦은 부상에 시달렸어요. 양쪽 발목을 수술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는데, 통증에 무뎌져서 그 상태를 몰랐던 거예요. 수술을 하면 복귀까지 4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발레리나의 수명이 안 그래도 짧은데 버티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른 꿈(연기)을 생각하고 있었을 때라 자연스럽게 발레를 그만 두게 됐죠. 지금도 비가 오면 쑤시고 무릎이 아파서 잠을 못 잘 때가 있어요."
왕지원: "사실 예체능 쪽은 본인 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굉장히 고생을 많이 하세요.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니까요. 그래서 발레를 그만 두고 연기를 해야 겠다고 결정했을 때 부모님 생각이 제일 많이 나고 죄송스러웠어요. 그래도 (부모님께서) 제 결정을 존중해주셔서 배우가 될 수 있었죠."
* 왕지원, 연기자가 된 이유
왕지원: "22살 무렵, 배우가 되고자 마음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을 받았다. 그 기간이 2년에서 3년 정도가 된다. 당시 원빈 선배가 소속된 회사와 전속계약도 맺고 잡지나 CF 쪽으로 활동을 했다. 연기에 대한 기본기를 닦는 시기였지만, 남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왕지원 원빈 인연)
왕지원: "그런데 그 시절 영화 ‘블랙스완’이 개봉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그 영화에 관해 물어보았다. 결국 엄마와 같이 가서 보고 말았다. 그리고…나는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금 놀랐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흔적이 눈 앞에 선연했다."
그리고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왕지원은 예명 대신에 그냥 자신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왕지원: "(제 성인 왕씨는 어감이 세기에) 당연히 바꾸자는 얘기가 많이 나왔어요.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전 '지유'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러다 한 오디션에 응시하게 됐는데 '지유'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이나 있는 거에요. 안되겠다 싶었죠. 만약 저까지 그 이름을 달고 나갔다면, 한 오디션장 안에 같은 이름이 세 명이나 있는거잖아요."
왕지원: "‘굿 닥터’ 하기 전부터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PD님들이 나이를 꼬집어 묻기도 하고, 주변에선 연기자 생활을 늦게 시작했다며 ‘되게 조급하겠다’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발레리나 생활을 해봤기에 시간이 그만큼 걸려야 잘 된다는 걸 알아요. 1~2년 이상 해서 잘 되는 건 신인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오래 묵혀야 잘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늘 마인드 컨트롤 해요."
확실히 2013년이면 26살의 나이기에, 요즘 추세에 비하면 많이 늦은 데뷔죠.
스스로 조급해질 수도 있을텐데, 발레를 했기 때문에 너무 성과에 쫓기지 않습니다.
결국 왕지원은 2012년 '닥치고 패밀리'에서 단역을, 2013년 '굿닥터'에서 조연을, 2014년 '로맨스가 필요해 3'에서 주연을 맡게 됩니다.
신인들중에서도 그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네요.
* 왕지원 성형하지 않았기에 개성적인 미인으로
왕지원: "아마도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라서 못되게 생겨서 불러주시는 것 같아요. (웃음) 연기 경험이 많지 않은데, 좋은 기회가 주어지는 걸 보면 저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았어요."
(왕지원의 개성적인 얼굴- 확실히 센 이미지가 돋보임)
확실히 왕지원이란 이름이 어감이 세기도 하고, 왕지원의 얼굴이 아주 개성적이기도 합니다.
성형수술을 하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개성을 간직할 수 있었던 거죠.
(수많은 미인 탤런트들이 성형수술로 성형전의 개성을 잃은 것에 비하면, 왕지원의 선택이 현명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왕지원 성형전 개성저인 외모 그대로 유지)
왕지원 어린 시절 사진
왕지원은 첫주연작 '로맨스가 필요해3'에서 오디션으로 발탁이 됩니다.
왕지원: "처음에는 (윤)승아 언니가 연기한 희재 역 오디션을 보러 갔었는데, 결국은 오세령 역에 캐스팅 되었다. 아직 스물 다섯인 내가 서른을 넘은 여자를 연기한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주변 30대 언니오빠들을 보면 나와 큰 차이가 없다. 걱정도 되었지만 설레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오세령을 만들어 나가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확실히 이십대 중반의 왕지원이었지만, 삼십대를 연기하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도회적인 오세령에 잘 어울렸죠.
* 왕지원 다시 발레리나로
그렇게 발레를 떠나 연기를 하던 왕지원이 2014년 다시 발레를 하게 됩니다.
바로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였죠.
왕지원: "막연하게 언젠가 연기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지상파 주연급 캐릭터로 선보일 줄 몰랐다. 게다가 (드라마속에서) 발레리나를 그만둔다는 설정까지 비슷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왕지원: "사실 발레복이나 슈즈를 쳐다도 안봤다. 싫어서라기 보다 이제 다른 직업을 가졌고 발레를 정말 할만큼 열심히 했던 기간이 있었다고 생각했다. 옷장에서 다시 토슈즈와 발레복을 꺼냈을 때 울컥하기도 했고 만감이 교차하더라."
그런데 극중 장면에서 왕지원의 등근육이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등근육이었죠.
왕지원: "사실 등근육에 대해서 난 몰랐다. 내 등을 볼 수 없으니까... 근데 생각해보면 17년간 발레를 했는데 그 정도 근육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확실히 왕지원의 등근육은 '이상함'이 아니라, 어릴 때 노력의 '훈장'인 것 같습니다.
왕지원 등근육 사진
* 왕지원 남자친구 경험담(왕지원 남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왕지원은 여자보다 남자들과 더 잘 어울리는 성격입니다.
초등학교때도 남자친구들과 어울려서 축구를 했다고 하니, 성격이 굉장히 털털했던 것 같네요.
왕지원: "대학교 때 남자친구에게 주려고 초콜렛을 만든 적이 있다. 화이트 초콜렛과 그냥 초콜렛을 중탕해 틀에 붓고 살짝 섞었더니 예쁘게 그라데이션이 만들어졌다."
왕지원: "사랑에 있어서는 오세령(로맨스가 필요해3의 극중 인물)과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것을 내팽개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랑에 올인하는 면이 있거든요. 그 남자에게만 집중하는 거죠. 사실 저는 가벼운 연애를 좋아하지는 않아요."
왕지원: "저는 남자 같은 성격에 해야 할 말을 타이밍이 놓쳐 못하고 혼자 고민하는 타입이에요. 보통 여자들이 아이쇼핑을 좋아하는데 저는 정말 쇼핑도 못하는 타입이죠."
왕지원 실제 성격
왕지원: "(옷차림은) 가볍게 입고 편하게 하고 다녀요. 게다가 집순이 이거든요. 게임하는 것 좋아해요.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것들이요. 웬만한 남자들보다 아는 게 많을 걸요. 만화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왕지원: "주변 분들이 다 생긴 것과 다르게 성격이 정반대라고 하더라고요. 남자애 같은 보이시한 면도 많고 털털해요. 친구에 대한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만화 좋아하고, 장난기 많고, 밝은 편이에요."
왕지원 실제 성격이 좀 특이하네요.
성격에서 남자같은 면이 있기도 하고, 게임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점도 남자같습니다.
하지만 혼자 끙끙 앓는 소극적인 면도 있으니, 좀 복잡한 캐릭터같네요.
왕지원: "하지만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 대리만족을 한다."
* 왕지원의 문제
왕지원은 이제 연기경력 2년차(단역부터 치면 3년차)인데, 벌써부터 연기에 대한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왕지원: "도회적인 이미지로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에 조금 속상한 마음도 있기는 해요. 전작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화려한 캐릭터와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게만 보실 것 같아 부담스러운 것도 있고요."
왕지원: "그런 부분을 깨는 것도 제 숙제인데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다는 것도 걱정이고, 왕지원은 그런 애랑 거리가 멀 수 있는데 ‘원래 저런 성격이야’라고 단정 지으실 것 같아 여러 생각들이 많아요. 이게 참 양날의 검인 것 같아요."
왕지원: "앞으로 연기적으로 부족한 것이 없고 내면이 꽉 찬 배우가 되고 싶다. 목표나 계획은 변하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2년차 신인인 왕지원을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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