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웅 아내 신은정은 1974년 1월 4일 태어났고, 1997년 SBS 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합니다.
(신은정 학력) 중경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신은정 역시 주연급 연기자가 아니었지만, 엑스트라로 출발했던 박성웅보다는 비중있는 역을 맡으면서 연기자로 성장하네요.
박성웅이 어릴 적 집안 형편이 넉넉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배구선수로 뛰었으며, 중학교때는 도대표(충청북도)로 활약하기도 했죠.
다만 왼쪽 무릎 부상으로 배구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1992년 박성웅은 건국대학교 분자생물학과에 진학을 하는데,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재수를 하게 됩니다.
박성웅: "30년 공직생활을 거친 아버지께서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다. 나 역시 군대를 다녀오니 각오도 새롭고 집념도 생기더라. 외대 진학 후 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법관에 대한 꿈을 키웠다."
결국 박성웅은 96학번으로 한국외대 법학과에 입학하게 되는데, 중간에 군 복무를 했다고 하더라도, 무려 6수만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네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들어간 대학을 박성웅은 바로 포기하고 맙니다.
당시 패션모델로 활동하던 형을 따라 카메라 앞에 선 것이 계기가 되었죠.
박성웅: "친형은 지금은 가업을 잇고 있지만 한때 패션모델로 활동했었다. 지금도 투잡으로 필라테스 강사 활동을 하며 특유의 끼를 발휘하고 있다."(박성웅 친형)
박성웅: "사시 준비 1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97년 1월부터 엑스트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 2000년부터 1년 동안 연극을 하며 연기에 대한 기본을 닦았다."
그런데 97~98년 경 공직에서 은퇴한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망하게 됩니다.
박성웅: "당시 금융위기가 터졌고, 지방에서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사업체가 부도를 맞았다. 온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박성웅: "과거 우리 집에 세를 살던 분이 도움을 주셔서 주유소 2층에 있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24시간 주유소에서 일하셨고, 어머니 역시 주유소 식구들에게 밥을 해주셨다.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결국 생활고때문에 박성웅은 편의점 알바(아르바이트)와 막노동,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조달하게 됩니다.
그 어려운 와중에도 박성웅은 늘 긍정적인 자세와 낙관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박성웅과 부인 신은정은 드라마 태왕사신기의 상대역으로 만나게 됩니다.
박성웅: "드라마에 함께 나온 김미경 선배가 ‘우리 드라마에서 네 상대역이 제일 예쁘다’고 하셨다. 상대역인 신은정을 처음 봤을 땐 제일 예쁜 것 같진 않더라."
박성웅: "그러고 6개월 상대역으로 지내다보니 왜 김미경 선배가 그렇게 얘기했는지 알겠더라. 마음까지 다 예뻤다. 그래서 6개월 만에 백허그하면서 ‘너 내거 할래?’라고 대시했다."
그런데 신은정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박성웅: "나중에 대답을 받았다. 당시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니 ‘말 못 할 정도로 가슴이 떨려 그랬다’고 하더라."
신은정: "외모는 우락부락하지만 의외로 순수하고 여린 면이 있어요. 이전에 봐왔던 남자 연예인의 모습이 아니었죠."
결국 둘은 태사기를 찍는 동안 비밀연애를 시작했고, 나중에 태사기의 일본 프로모션 장소에서 일본 팬들 앞에서 공개하고, 2008년 10월 18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박성웅 신은정 배우자)
둘 사이의 자녀로는 아들 박상우(이름)가 있습니다(박성웅 신은정 자식).
(둘다 늦은 나이이기에 이혼 후 재혼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지만, 둘다 초혼이 맞습니다.)
박성웅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습니다. 오랫동안의 무명 생활속에서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았던 낙관적인 태도가 대중의 호감을 얻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낙관적이 되고자 원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처때문에 결국은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박성웅의 예를 들면, "곧 성공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도 내일도 돈을 못버는 무명 배우 생활을 무려 십년간 해야 했었죠.
장밋빛 미래를 끊임없이 깨는 처참한 현실은, 의지력이 아주 강하지 않으면 극복하기 힘듭니다.
박성웅 신은정 아들 박상우 가족 사진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나치의 수용소에 갇힌 유태인들이 있었습니다.
(유태인인지 연합군 포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네요.)
전쟁이 끝난 다음에 유태인들을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비관적인 사람은 상당수가 살아남은 반면에, 성격이 낙관적인 사람은 대부분이 죽었다는 사실이 파악됩니다.
낙관적인 사람들은 독일이 항복하고 종전되리라는 기대가 매일 꺾여 절망에 빠진 반면에, 비관적인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절망에 빠지지 않았던 것이죠.
개인의 성격은 본인 의지의 결과이자 환경의 영향입니다. 낙관적인 성격이 이렇게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기에,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꿈이 좌절되는 와중에도 절망에 빠지지 않았던 박성웅의 의지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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